봄날 하루

오늘은 춘분.
괌 서점에서 사온 깜찍한 달력에는 어제 날짜에 "The first day of Spring"이라고 적혀 있다.
미국에도 한국에도 이제 봄이 시작됐다.

미국으로 살러 간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를 하니, 더욱 아련하게 느껴진다. 
서로 다른 동네에 살아도 맘 먹으면 언제나 만날 수 있던 때와는 이제 달라진 것이다.
고단한 하루를 끝내고 맥주 500cc 한잔을 반씩 나눠마시면서 매콤달콤한 베비큐 치킨을 먹던 저녁, 쌩얼로 만나 동네 온천이나 수영장을 가던 주말아침, 기분이 꿀꿀하다거나 지나치게 날씨가 좋다는 핑계로 츄리닝 차림으로 공원을 걸어다니던 밤, 동대문시장에서 밤 쇼핑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장충동 족발을 먹던 새벽, 꿀꿀한 연애사를 하소연하며 3분의 1병쯤의 소주를 나눠 마시던 밤.
내 인생에서 가장 알차게 살았던 시간들이다. 생애 첫 직업을 가지고 고군분투하면서도 참 즐겁게 살았었다. 
고작 10대후반에 만나, 20대후반을 함께 보낸 정도의 우리. 아직도 살아내야 할 인생의 길은 너무나 길게 남아있는데. 이제는 서로 다른 사람에게 기대어, 이제는 추억이 아닌 현실을 쌓으면서 그렇게 살아가겠지.

고요하게 흘러온 내 삶에 쉴새없는 의문을 품고 공중을 날으는 마음을 부여잡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요즘, 내가 누렸던 삶의 행복들, 다시 새로운 삶에서도 누릴 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 자꾸만 주변을 돌아본다.

꽁꽁 얼어붙어있던 내 삶에도 새로운 봄날, 만들 수 있을까?
두 해 가까이 되어 간다, 스스로 만든 겨울이.  시간이 지나면, 모두 회복되는구나. 당장 어디론가 파묻힐 것만 같았던 마음도, 덩달아 힘들어한 몸도, 이제는 괜찮다. 조금씩 용기를 내고 있다.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새로운 봄날에 서있겠지. 그럴 수 있겠지.